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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와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실천해 봅시다!(송준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11
조회 46104

치매환자와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실천해 봅시다!

 

송준아 교수(고려대학교 간호대학)

 

치매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치매와 동반되는 가장 기본적인 증상인 기억장애와 정신혼미 때문에 아버지나 어머니, 언니, 오빠, 남편 또는 아내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자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이해되는지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치매에 걸린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매우 당황하게 하고 화가 나게 하거나 절망하며 슬퍼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깊게 우리의 삶 속을 파고 들어 크고 작은 생채기를 만든다. 결국 좋든 싫든,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간에 치매 환자와 가족의 관계는 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에 어떠한 태도로 적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치매환자와 그를 돌보아야 하는 가족인 나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일상이 되어 질 수밖에 없다.

 

버지니아 벨과 데이비드 트록셀은 그들의 저서 “치매: 고귀함을 잃지 않는 삶”에서 ‘가장 좋은 친구’처럼 환자에게 접근하면 치매환자와의 관계변화에서 오는 고통과 상실감이 줄어들고 환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가족인 내가 생각을 달리하고 역할을 조금 바꾸어 본다면 치매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 아니라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 환자는 나를 자신의 동지라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 언니, 오빠, 남편 또는 아내가 아닌 환자의 가장 좋은 친구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환자를 사랑하지 않거나 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방법을 달리해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가족은 좀 더 자연스럽고 우호적인 돌봄 방법을 배우게 되고,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며, 환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돌봄제공자인 나에게 생기는 스트레스와 긴장을 만족감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우정이 담긴 돌봄은 환자에게 사회규범이나 지켜야 할 도리를 생각나게 도와주어 환자의 행동을 좋아지게 한다고도 하였다. 이는 아마도 가족이 아닌 가장 좋은 친구로의 관계 재설정을 통해 돌봄을 제공하는 내가 치매환자에게 거는 기대와 그에 따른 실망을 현실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정은 “친구 사이의 정”을 일컬으며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우정 만들어 나가며 이를 소중히 여긴다. 우정을 위해, 가장 좋은 친구 즉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베프”가 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우리가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나의 친구에 모든 것을 맞추려 한다. 친구의 성격, 기분, 습관, 문제해결 방식을 존중하고, 친구를 무시하지 않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 하며, 친구의 부족 부분을 이해하고 그 공백을 잘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농담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즐기며,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뿐 아니라 격려와 칭찬 또한 아끼지 않는다. 친구가 체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도우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자주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베프가 되기 위한 노력이다. 마지막으로 베프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친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무언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완벽했던 아버지, 자상했던 어머니, 꼼꼼하고 정갈했던 아내 혹은 뭐든지 척척 이었던 남편’이라는 과거를 기준으로 형성된 기대감과 지금은 그렇지 못할 뿐 아니라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절망감을 마음속에서 비워 내고,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치매환자를 새로운 우정을 쌓아가는 친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의 베프가 되기 위한 위의 방법을 하나씩 시도해 본다면 치매환자와의 일상에서 작은 변화와 큰 보람을 조금씩 깨닫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노트북”이라는 영화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치매에 걸려 매일 기억을 잃어 가고 결국 자신을 남편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아내 앨리를 위해 남편인 노아는 자신이 남편임을 알아달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요양원에서 새로 사귀게 된, 매일 책(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적은 일기)을 읽어 주는 ‘친구’로 접근한다. 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주는 그 친구에게 앨리 또한 마음을 열어 새로운 우정을 쌓아 가게 되며, 자신을 남편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이지만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노아의 모습 또한 매우 감동적이다. 아마도 이는 ‘가장 좋은 친구’로 치매환자 돌보기의 가장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려운 일에 직면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가장 친한 친구를 찾게 되고, 낯선 곳에서 길을 잃게 되면 본능적으로 가장 친절하게 보이는 누군가를 찾게 된다. 본 필자는 치매환자 가족이 아들이나 딸,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기억의 숲에서 길을 잃은 치매환자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길 희망하며,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장 친절하게 보이는 그 누군가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지란지교(芝蘭之交):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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